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클랜드 전쟁 (문단 편집) === 원자력 잠수함 컨커러의 아르헨티나 순양함 격침 === 5월 2일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극적인 해상 교전상황이 발생하였다. 영국 해군의 [[처칠급 잠수함|처칠급 공격원잠]] HMS 컨커러(Conqueror)가 아르헨티나 해군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를 Mk 8 어뢰로 격침시킨 것이다. 영국 해군의 HMS 컨커러는 처칠급 원자력 잠수함의 3번함으로 1969년 진수되고 1971년 취역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MS_Conqueror_%28S48%29.jpg|width=500]] ▲ 영국 해군의 [[처칠급 잠수함|처칠급 공격원잠]] 컨커러(HMS Conqueror) 아르헨티나 해군의 헤네랄 벨그라노는 미국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5번함인 USS 피닉스(CL-46)였는데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과 남미 국가간의 '상호 방어 지원 프로그램'(Mutual Defense Assistance Program)에 따라 넘겨진 군함들 중 하나이다.[*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총 7척 중 피닉스를 포함하여 무려 5척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에 공여 또는 매각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ARA_General_Belgrano_underway.jpg|width=500]] ▲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 컨커러는 1982년 4월 30일 포클랜드 섬 남서쪽 바다를 초계하던 중 헤네랄 벨그라노를 발견하고 조용히 따라붙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유일의 항공모함 베인티싱코 데 마요(Veinticinco de Mayo)가 포클랜드 섬 북쪽에서 접근하고 있었으므로 영국 함대는 남북으로 협공당할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 항공모함 베인티싱코 데 마요가 기상 문제로 공격을 하지 않고 철수했다. 경항모인 베인티싱코 데 마요는 캐터펄트 출력이 약했기 때문에 영국 기동함대를 공격하기에 충분한 연료와 무장을 탑재한 A-4 스카이호크 공격기를 이륙시키려면 일정 풍속의 바람을 받으며 전속력으로 질주해야 했으나, 공격 예정시각인 5월 2일 새벽에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서 스카이호크를 띄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헤네랄 벨그라노도 공격을 포기하고 서쪽으로 함수를 돌려 영국이 선포한 완전봉쇄구역(Total Exclusion Zone)을 벗어났다. 이 시점에서 영국은 TEZ 바깥의 적함 격침을 금지하는 교전수칙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컨커러는 벨그라노를 추적하면서도 공격을 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영국 317.8기동전대 사령관 우드워드 제독은 여전히 벨그라노 전단의 존재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겨우 1년 전 훈련에서 본인이 자신의 기함이었던 카운티급 구축함 HMS 글래모건을 가지고 미 해군 항공모함 USS 코럴 시를 상대로 해냈던 것처럼 벨그라노 전단이 언제든 방향을 바꿔 기동부대의 감시망을 뚫고 항모 지근거리에서 출현, 기습공격을 가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GMT 5월 2일 0710시경 우드워드 제독은 영국 본토의 잠수함사령부가 직접 포클랜드 해역의 공격원잠을 통제하는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기함 허미즈에서 다음과 같은 전문을 통신위성에 업로드한다. >"발신 317.8기동전대 사령관, 수신 컨커러, 긴급 – 벨그라노 전단을 공격하라."[br](From CTG 317.8, to ''Conqueror'', text priority flash – attack ''Belgrano'' group.) 통신위성에 올라온 명령문을 확인한 해군본부는 명백한 월권행위에 깜짝 놀라 즉각 전문을 삭제했지만, 우드워드 제독이 벨그라노 격침을 시급히 원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에 함대사령관 필드하우스 제독과 국방참모총장 테렌스 르윈 제독은 대처 총리에게 승낙을 얻어 GMT 1230시부로 TEZ 바깥의 아르헨티나 함정에 대한 공격을 허가한다는 변경된 교전수칙을 통신위성에 전송한다. [[https://youtu.be/jcBkvr_PGaY|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에서]] 헤네랄 벨그라노에 대한 공격을 허가할 때를 묘사한 영상. 앞서 언급한 봉쇄구역 이탈 문제 때문에 허가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종일 벨그라노를 추적하던 컨커러는 기동부대와 영국 본토 사이의 소동이 일단락된 후인 GMT 17:00시에야 잠망경 심도로 부상, 변경된 교전수칙을 수신했다. 컨커러 함장 크리스토퍼 레포드-브라운 중령은 공격하겠다는 전문을 발송한 후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5월 2일 오후 6시경 헤네랄 벨그라노 침로 측면 1400야드 거리에서 총 3발의 Mk 8 어뢰를 발사했다. 그 중 2발을 함수와 함체 후방에 피격당한 헤네랄 벨그라노는 피해가 컸기 때문에 불과 20분만에 함수가 꺾이고 대량의 해수가 들어차 침몰했다. 헤네랄 벨그라노는 어뢰가 폭발하면서 함선의 전기계통이 모두 고장나는 바람에 통신으로 구조요청을 할 수조차 없었다. 또한 침몰 현장은 기상이 안 좋아 가시성이 매우 떨어지는 상태였다. 때문에 당시 헤네랄 벨그라노에는 호위 구축함 2척 ARA 이폴리토 보우차르드(Hipolito Bouchard) 및 ARA 피에드라부에나(Piedrabuena)가[* 이 두 척 또한 미국에서 공여받은 구축함이다. ARA 이폴리토 보우차르드는 미국의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USS Borie(DD-704)였으며 1972년 아르헨티나 해군으로 재취역했다. ARA 피에드라부에나도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USS Collett(DD-730)였으며 1977년 재취역했다. 두 척 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에 모두 참전한 역전의 노장이었다.] 붙어 있었음에도 열악한 기상에 구조 신호도 받지 못해 호위 구축함들이 순양함이 침몰한 사실을 몇 시간 동안이나 몰랐다. 결과적으로 323명의 승조원이 전사했으며 이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군 전사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춥고 거친 해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함장 엑토르 본소(Héctor Bonzo, 1932 ~ 2009) [[대령]]을 포함한 나머지 700여명의 승조원은 다행히 무사히 구조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해군의 디젤잠수함 ARA 산 루이스(San Luis)를 제외한 모든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들은 아르헨티나 본토에 위치한 항구로 철수했으며 이후 포클랜드 전쟁 동안 다시 해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파일:0404625.jpg]] ▲ 컨커러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前 미국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피닉스(CL-46)). 1982년 5월 2일 침몰한 헤네랄 벨그라노는 [[진주만 공습]] 때도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고 2차 세계 대전 중 태평양을 종횡무진 누비며 큰 활약을 한 네임드 순양함이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맥아더 장군의 기함으로도 뛰었고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서 종군성장 11개를 수상할 정도로 유명했음은 물론 큰 손실없이 종전을 맞이했으나, 수십년 뒤 뜻밖의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원자력 잠수함의 실전 격침 첫 사례 정도로 보이는 이 교전의 의의는 생각보다 크다. 아르헨티나의 해군 가용 전력 대부분이 투입되어 포클랜드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항공모함 베인티싱코 데 마요와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로 포클랜드 해역의 영국 항모기동부대를 협공하려던 시도가 취소된 후 철수하던 벨그라노가 격침당하자 아르헨티나 해군은 더이상 바다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됐고, 제해권과 제공권은 영국이 가져갔다.[* 항공모함조차 항구에 짱박혀버리자 함재기들도 본토 기지에서 출격하게 되어 간당간당한 항속거리 내에서 작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함재기들이야 전부 A-4이었으나 영국도 미사일을 제외하면 해리어 또한 공중전에 유용한 기종은 아니었다.] 이로써 영국은 사실상 이렇다 할 방해 없이 포클랜드 섬을 공략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첫 날 이후로 최첨단 레이더 시스템까지 망가져 영국 해군 함정들이 포격 거리로 접근하기 전까지 알아챌 수도 없었다.] 아르헨티나군은 전투기들 항속 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영국 해군에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교전수칙을 변경하여 TEZ 바깥의 아르헨티나 함정을 격침시킨 영국 정부의 결정은 영국에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65년부터 1999년까지 영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반대한 골수 반전파인 탬 디엘(Tam Dalyell, 1932 ~ 2017) [[노동당(영국)|노동당]] 하원의원은 영국 정부가 [[페루]]가 제시한 평화협정안을 무력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태를 확전시키고자 공격을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83년 총선에서도 대처의 반대파는 벨그라노 격침이 총선 승리를 위해 대처가 고의로 사태를 확전시킨 증거라고 주장했다. 1983년 5월 공영방송 BBC 1의 시사 프로그램 네이션와이드(Nationwide)의 생방송에 출연한 마거릿 대처 총리에게 다이애나 시드니 굴드(Diana Sydney Gould, 1926 ~ 2011)란 평범한 시민이 이 문제를 따지고 든 게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https://youtu.be/3JZlP5qQVtE|#]] 굴드는 대처 총리에게 왜 벨그라노가 TEZ 바깥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공격하도록 명령했냐며 힐난조로 질문했고, 처음에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벨그라노가 영국 기동부대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공격을 명령했다고 대답하던 대처도 굴드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단단히 화가 나서 "우리 해군 애들을 지키기 위해서 함대에 위협이 되는 적함을 격침시켰다고 총리가 비난을 받는 나라는 영국뿐일 것 같다.(I think it could only be in Britain that a Prime Minister was accused of sinking an enemy ship that was a danger to our Navy, when my main motive was to protect the boys in our Navy.)"고 쏘아붙이고 전화통화를 끝냈다. 결과적으로 이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었다. 벨그라노 격침은 현장지휘관의 강력한 의사표명과 이에 동감한 총리의 최고 군사조언가 두 사람의 권고를 대처가 수용한 것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 정부 역시 1994년 헤네랄 벨그라노의 격침은 적법한 전시행위라는 사실에 동의했고, 2003년에 벨그라노의 함장이었던 본소 대령도 "헤네랄 벨그라노는 발견하는 모든 영국 군함을 격침시킬 것"을 명령받았던 전투 항행 중이었으므로 HMS 컨커러의 공격은 정당한 교전행위였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논란은 종식되었다. 본소 대령은 1983년에 대령으로 예편했고, 2009년에 76세로 사망했다. 컨커러의 헤네랄 벨그라노 격침은 2023년 현재까지도 교전 상황에서 원자력 잠수함이 어뢰로 군함을 격침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원자력 잠수함이 첫 진수를 한 1954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포클랜드 전쟁처럼 대규모의 해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굵직한 전쟁은 꽤 많았지만 거의 모두 육상전이나 공중전이 주가 되었고 해전이 주가 된 전투는 포클랜드 전쟁이 유일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